수은등 아래 벚꽃

* 2013. 10. 15. 22:23

수은등 아래 벚꽃 

황지우



社稷公園 비탈길,

벚꽃이 필 때면

나는 아팠다

견디기 위해

도취했다

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

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

어떤 죄악도 아름다워

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

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



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

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,

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,

벚꽃이 추악하게, 다 졌을 때

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

그때 이미 다 알았다



이제는 그 살의의 빛,

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

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,

오직 축하해주고 싶은,

늦은 사랑을

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

나는 비로소

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

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

Posted by 산드링
,